진정한 삶의 본질을 꿰뚫어본 철학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염세주의 철학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인간의 고통과 의지의 본질에 대해 심오하게 탐구했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어린 시절과 염세주의 철학 형성
1788년, 독일 철학의 거장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당시 프로이센 왕국 단치히(Danzig, 현 폴란드 그단스크 Gdańsk)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염세주의 철학의 대명사로, 삶의 고통과 의지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사상가입니다.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Heinrich Floris Schopenhauer)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신경질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인해 운하에 투신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쇼펜하우어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염세적인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니 요한나 헨리에테 트로지너(Johanna Henriette Trosiner)는 지적이고 사교적인 여성이었으며, 바이마르(Weimar)의 문학 살롱에서 활동하며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염세적인 성향을 이해하지 못했고, 쇼펜하우어 역시 어머니의 사교적인 삶을 경멸했습니다. 이러한 불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평생 동안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2. 고독한 천재 철학자
1818년, 쇼펜하우어는 그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세계의 근본 원리를 맹목적인 의지(Wille)로 규정하고, 인간의 삶은 이러한 의지의 끊임없는 충족을 위한 고통의 연속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세상 만물의 본질은 맹목적인 의지이며, 우리는 그것이 드러난 현상인 표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염세적인 세계관은 당시 낭만주의와 이상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철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철학적 대립을 이루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과 낙관적인 세계관과는 달리, 그는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고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헤겔의 강의가 열리는 시간과 같은 시간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고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부정적이고 무거운 주제로 인식되는 그의 강의는 거의 학생이 없을 정도로 외면받았습니다.
“Talent hits a target no one else can hit; Genius hits a target no one else can see.”
재능은 다른 사람은 맞출 수 없는 과녁을, 천재성은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과녁을 맞춘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큰 좌절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에 대한 확신을 굽히지 않고 고독하게 학문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초기에 주목받지 못하던 염세주의적 철학은 말년에 이르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의 불안과 허무주의적 분위기와 맞물려 깊은 인상을 남겼고,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사회적 명성이나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진리 탐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던 그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72세의 나이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3.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 의지와 고통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세계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혁명적인 해석을 제시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사유의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1) 의지(Wille)
그는 세계의 근본 원리를 “의지(Wille)”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의지는 단순한 욕망이나 의식적인 선택과는 다른, 강렬한 본능적 의지와 맹렬한 생존 및 자기 보존의 충동을 의미합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햇빛을 향해 끊임없이 가지를 뻗듯이, 모든 존재는 맹목적인 의지에 이끌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The greatest mistake a man can make is to exchange his happiness for mere existence.“
삶의 가장 큰 착각은 우리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는 충족될 수 없는 의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만족은 잠시뿐, 곧 새로운 욕망이 솟아나 끊임없는 고통의 굴레를 반복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의지의 맹목성 때문에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2) 고통(Pain)
그는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찬 여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욕망의 충족은 일시적인 쾌락을 주지만, 이는 곧 새로운 욕망의 발생으로 이어져 다시 고통을 낳습니다. 그리고 계속 발생하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결핍과 좌절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말합니다.
“Most of life is so dull that there is nothing to be said about it.“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이고, 나머지는 지루함이다.
심지어 욕망이 없는 상태는 지루함과 권태라는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야기하고, 인간은 욕망의 충족과 부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는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3) 고통의 극복(Overcoming pain)
그는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고 정의했지만, 동시에 고통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해방, 즉 의지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술 (Art)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 우리는 일시적으로 개인적인 의지와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한 관조의 상태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는 예술이 우리에게 의지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윤리 (Ethics)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개인의 이기적인 의지를 약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이 이기심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금욕 (Asceticism)
그는 금욕이 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궁극적인 해방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세상과의 연결을 끊음으로써, 의지의 끊임없는 충족 욕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극단적인 형태의 해방입니다.
4. 칸트 철학의 비판적 계승
그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했습니다. 칸트는 현상계(Phenomenal world,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와 물자체(Noumenal world,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세계 그 자체)를 구분했는데, 그는 이를 받아들여 현상계를 ‘표상'(Vorstellung)으로, 물자체를”의지(Wille)”로 해석했습니다.
칸트는 물자체를”인식 불가능한 것”으로만 남겨두었지만, 그는 맹목적인 “의지”라는 능동적인 힘으로 규정함으로써 칸트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즉, 우리가 감각과 이성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는 의지가 시간, 공간, 인과율이라는 형식을 통해 객관화 된 표상일 뿐이며, 진정한 실재는 그 배후에 존재하는 맹목적인 의지라는 입장입니다.
5. 영원한 지혜를 남긴 철학자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주의적, 성과 중심적 사회는 쇼펜하우어가 정의한 인간의 본성과 일치합니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성취하고, 소유하려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가 설명한 의지의 완벽한 구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appiness is merely the absence of pain.“
행복은 부정적인 것의 부재일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프로이트, 니체와 같은 후대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무의식의 개념, 억압된 욕망에 대한 이해 등 현대 심리학의 근간이 되는 많은 개념들 탄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염세주의적 철학은 얼핏보면 세상을 고통과 불행이 가득한 부정적으로 바라보며,행복이나 즐거움이 덧없다는 어두운 면만 강조되어 보이지만,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본 통찰의 거장으로 평가 받습니다.
“Every man takes the limits of his own field of vision for the limits of the world.”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로 여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스트레스, 불안, 불만족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데 지혜를 제공하고, 인간의 욕망으로 달리는 고통의 열차는 자신이 의지에 따라 계속 달리게 하거나, 멈출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