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의 사냥화를 통해 본 권력과 인간의 본성

루벤스의 사냥화
The Tiger, Lion and Leopard Hunt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냥꾼이 되거나 사냥감이 되곤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권력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습니다. 오늘은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사냥화를 통해본 권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과 짐승의 경계에 대한 질문

얼핏 보면 그냥 사냥하는 장면 같지만 이 그림은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 “나는 어디까지 인간이고, 어디부터 짐승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1. 짐승을 제압하는 인간인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인가?

처음 이 그림을 보면 시선을 압도하는 역동성과 정교한 해부학적 표현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얼굴에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절박함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게 보입니다. 맹수와 인간의 몸짓이 서로 교차하고 눈빛이 맞물리는 순간 인간은 과연 문명을 대표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문명의 이름으로 싸우는 또 다른 맹수인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Homo homini lupus est.”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 Thomas Hobbes —

루벤스는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이 문명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냥이 단지 생존이나 스포츠가 아니라, 내면의 야성을 일깨우는 의식이 됩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동물보다 더 폭력적이 되기도 합니다.

2. 동물은 왜 그토록 인간적으로 묘사되는가?

그림을 자세히 보면 루벤스는 맹수들도 단순히 본능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맹수의 눈에도 공포와 분노, 그리고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동물도 감정과 통증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사실에 주목해 인간과 감정적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벤스의 사냥화 속 동물의 감정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인간이 동물을 ‘타자화’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동물 역시 감정과 인식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The animal looks at us, and we are naked before it.”
동물은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는 그것 앞에서 벌거벗는다.
— Jacques Derrida —

루벤스도 맹수를 단순한 먹잇감이나 적이 아니라, 인간만큼이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맹수를 두려워하고 제압하려는 이유는 그 안에 존재하는 본능이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일 겁니다.

3. 사냥은 문명의 표식인가, 야성의 폭로인가?

사냥화는 인간 사회와 문명의 이면에 깔려있는 원초적인 폭력성과 불안정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연을 통제하고, 위계적 사회 질서 안에서 문명화되었다는 근거로 우위에 위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냥을 즐기며 비문명적 행동을 즐겼습니다.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모방이론에서 유사한 개념을 설명합니다.

“Humans project the community’s violence onto an external other and restore temporary order by eliminating it.”

인간은 공동체의 폭력성을 외부의 타자에게 투사하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질서를 회복한다.

— René Girard —

그림 속 맹수는 인간 공동체의 폭력성을 투사하는 대상이 되고,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을 실현하는 희생양인 동시에 인간의 야성을 대변하게 됩니다.

니체와 푸코를 통해 본 권력의 다층성

사냥화는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고, 어떻게 정당화되며, 인간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철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철학자 “니체”의 삶과 철학

📝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탐구한 “미셸 푸코”의 삶과 철학

니체 : 권력은 존재의 본질이다

니체는 권력을 조직과 구성 안에서 보이는 힘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생존과 성장의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개념을 “권력의지(Wille zur Macht)”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을 넘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확장하려는 충동을 본능적으로 지니게 되며, 이 욕망은 문화, 예술, 도덕 등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기반이 됩니다.

루벤스의 그림에서 인간은 맹수의 이빨 앞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맨손과 창으로 자신의 삶을 걸고 맞서며 맹수 역시 반격하며 어느 쪽이 승리할지 모호하게 표현합니다. 정확히는 일부는 인간이, 일부는 맹수가 승리할 듯 보입니다.

이런 연출은 권력이 지속적으로 도전받는 대상이며, 끊임없이 투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 담고 있습니다.

푸코 : 억압이 아니라 생산적 장치

미셸 푸코는 니체의 사유를 바탕으로 권력의 개념을 확장합니다. 푸코가 생각하는 권력은 어떤 “힘”이 아니라 특정 사회 속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았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지배하는 상하 구조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규율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적 구조가 됩니다.

이 관계적 구조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학교, 집, 직장, 병원, 언론, 예술작품 등의 도구를 통해 가시화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냥화도 단순 회화에 그치지 않고 당시 귀족 사회의 지배 이론을 시각화하는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유럽 귀족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를 정당화하며, 인간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는 질서를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상징적 도구가 됩니다.

시각적 권력의 매개체가 된 브랜드

현대 사회에서 브랜드는 대표적인 시각적 권위의 매개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정체성, 사회적 지위, 개인의 세계관까지 브랜드를 통해 소비하고 드러냅니다.

감정으로 작동하는 시각적 권력

루벤스의 사냥화는 보는 이의 무의식에 잠재된 욕망과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브랜드도 유사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스포츠 브랜드는 극한의 신체 역량과 경쟁적 상황을 강조해 도전적 자아를 환기시키고, SUV 브랜드는 사자를 광고에 등장시켜 그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는 사자의 이미지와 연결되도록 설계하기도 합니다.

브랜드는 시각을 통해 사냥꾼이 되고 싶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그 감정은 구매라는 행동을 유도합니다. 결국 권력은 명령이 아니라 욕망을 공략해 작동합니다.

새로운 도구

루벤스가 활동하던 시절 당대 귀족의 권위를 그림으로 구축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브랜드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고가의 명품이나 사치재를 중심으로 기업들은 특정 소비 계층에게만 허용된 시각적 코드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그 시각적 코드를 통해 스스로의 신분과 권력을 구분 짓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참고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Paul_Rub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