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이한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

세네카의 초상화 이미지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행복과 평온함에 대한 지혜를 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권력의 정점에서 맞이한 마지막 순간까지 스토아 철학의 실천적 힘을 보여주며 초연한 모습을 보였던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세네카의 어린 시절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기원전 4년경 히스파니아(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당대 로마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 가문이었고, 아버지는 웅변술에 정통한 학자였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철학과 문학, 웅변술을 배우며 지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스토아 철학자들인 아탈루스와 소티온의 영향을 받아 금욕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Disease is not an obstacle to virtue, but a promoter of it.”
질병은 덕성의 장애물이 아니라, 촉진제이다.

한때 결핵으로 고생했던 시기에는 외딴 지역으로 이동해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삶은 얼마나 짧고 취약한가”를 깨달았고, 이때의 경험은 그의 철학적 관점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 정치적 성공과 몰락

세네카는 31세에 로마로 돌아와 정치계에 입문하며 철학적 사유와 웅변술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서 로마 사회의 엘리트 계층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웅변가로서도 뛰어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 때문에 당시 로마의 주요 사상가 중에서도 철학적 통찰력과 정치적 전략을 결합할 수 있는 드문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1) 칼리굴라 황제 치하에서의 위험과 생존

초기 정치 경력은 황제 칼리굴라(Caligula) 치하에서 시작됩니다. 칼리굴라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만한 인물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는 폭군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세네카 역시 그의 웅변과 지혜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칼리굴라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칼리굴라는 그를 제거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병약하니 어차피 곧 죽을 것”이라는 측근의 말을 듣고 처형을 취소했다고 전해집니다.

(2) 클라우디우스 치하에서의 부상과 유배

칼리굴라가 암살되고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그는 다시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를 얻게 되어 원로원의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고, 로마의 정치 무대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갑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클라우디우스의 황후 메살리나(Messalina)가 그를 정치적 경쟁자로 간주하면서 그가 음란한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씌워 코르시카섬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3) 코르시카 섬에서의 유배 생활

코르시카에서 세네카는 철학적 저술에 몰두하며 내면의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스토아 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감정을 통제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더욱 단련했습니다.

덕분에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철학적 기반을 확고히 다졌고, 이후 정치와 철학의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3. 철학적 이상과 현실의 충돌

세네카와 네로의 복잡한 관계는 철학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네로의 가정교사에서 시작해 로마 제국의 핵심 고문으로 활동했던 그는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네로의 초기 통치를 이끌었지만, 점차 폭군으로 변모하는 네로와의 갈등 속에서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1) 네로와의 복잡한 관계

세네카의 유배 생활은 클라우디우스의 두 번째 아내인 아그리피나(Agrippina)의 개입으로 끝이 났습니다.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Nero)를 황제로 세우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고, 네로의 교육을 맡길 적임자로 세네카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로마로 복귀하여 네로의 가정교사로 임명되었고,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는 그의 주요 고문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시 한번 정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2) 세네카의 정치적 영향력

네로가 집권 초기에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네카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네로에게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전하며 절제와 이성을 강조했고, 네로가 폭군으로 변하지 않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했으며, 로마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관용적인 정책과 문화적 후원을 장려했습니다.

또 이 시기에 많은 저서를 집필하며 황제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강화하는 데에도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네로는 권력의 유혹에 빠졌고,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황제로 변해갔습니다.

(3) 네로의 타락과 세네카의 고민

네로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폭군으로 변해갑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암살한 사건은 네로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이 사건으로 세네카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이자 황제인 네로의 행동에 대해 깊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정치적 현실과 자신의 철학적 이상 사이에서 큰 괴로움을 겪던 그는 더 이상 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점차 정계에서 물러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은퇴를 요청하며 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세네카를 자신의 권력 유지에 필요한 상징적 인물이라 생각한 네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4. 철학적 신념을 지킨 마지막 순간

네로황제에게 최후의 명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세네카의 모습

네로가 점차 폭군으로 변모하면서 둘 사이의 균열은 점차 커집니다. 오랜 시간 스승이자 조언자로서 네로 곁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자신의 스승이자 조력자를 정치적 위험으로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신의 스승에게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도록 명령하게 됩니다.

“Death is the wish of some, the relief of many, and the end of all.”
죽음은 어떤 이들에게는 소망이고, 많은 이들에게는 해방이며, 모두에게는 종말이다.

세네카는 이러한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평온한 태도로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는 물리적인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철학적 가르침과 전하며 초연하게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5. 세네카 철학의 핵심

세네카가 실천한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세기경 키프로스 출신의 제논(Zeno of Citium)이 아테네의 시장 회랑(Stoa)에서 강의를 시작하며 창시된 학파입니다.

이후 클레안테스(Cleanthes), 크리시푸스(Chrysippus)와 같은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을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러 #에픽테토스(Epictet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그리고 세네카로 이어지며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단순한 삶을 추구한 철학자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지혜로 배우는 “마음의 자유”를 찾는 방법

특히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와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세네카와 함께 후기 스토아학파의 3대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Philosophy teaches us to act, not to speak.”
철학은 우리에게 말이 아닌 행동을 가르친다.

모두 공통적으로 이성적 판단과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삶을 강조했지만, 세네카는 특히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며 철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1) 시간의 가치: 유한한 삶의 무한한 가치

세네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시간의 소중함이었습니다. 그는 저서 「인생이 짧다고 말하는 당신에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It is not that we have a short time to live, but that we waste a lot of it.”

우리의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많이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세네카는 시간을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닌, 우리의 실존적 가치를 결정하는 근본 요소로 보았는데요, 특히 세 가지 관점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Begin at once to live, and count each separate day as a separate life.”

지금 당장 삶을 시작하라. 그리고 하루하루를 별개의 삶으로 여기라.

  • 현재에 충실히 살기: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 의미 있는 활동에 시간 투자하기: 무의미한 사교나 쾌락을 줄이고 자기 계발과 성찰에 시간 쓰기
  • 시간의 주인이 되기: 타인의 요구나 사회적 압박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2) 감정의 통제: 이성과 감정의 조화

세네카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지혜롭게 다루는 법을 통해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가르쳤습니다.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피해 깊이 있게 고려하고, 감정의 원인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을 주장했습니다.

“The greatest power of governance is to govern oneself.”

가장 위대한 통치력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Anger, if not restrained, is frequently more hurtful to us than the injury that provokes it.”

억제되지 않는다면, 분노는 종종 그것을 유발한 상처보다 더 해롭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네카가 스토아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완전한 제거가 아닌 현명한 관리를 강조했다 부분인데요, 그가 말한 통제법은 단순히 억제를 통한 통제가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과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다스리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3) 역경에 대한 태도: 시련을 통한 성장

그는 역경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법을 강조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 할 수 있는 대비를 하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되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집중하면서 역경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Difficulties strengthen the mind, as labor does the body.”

어려움은 노동이 육체를 강하게 하듯 정신을 강하게 한다.

이런 역경에 대한 관점은 현대에서 마음의 근력 또는 심리적 회복력을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유사한 개념으로, 단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고 성장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4) 운명 사랑하기: Amor Fati

세네카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관점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에도 영향을 끼친 개념으로, 고난조차도 성장의 기회로 바라보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A good character is the only guarantee of everlasting, carefree happiness.”
좋은 성품만이 영원하고 평온한 행복을 보장한다.

운명에 대한 사랑은 예상치 못한 문제는 배움의 기회를 찾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나를 성장시켰는지에 집중해 나의 경험과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참고자료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Lucius-Annaeus-Seneca-Roman-philosopher-and-states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