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의 문화유산이자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오늘은 영국 산업혁명을 이끌고 세라믹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혁신적인 브랜드 웨지우드(Wedgwood)의 이야기입니다.
조샤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
창립자인 조샤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는 대대로 도공을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1살 무렵 천연두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다리로 물레를 돌려야하는 도공에게는 치명적인 제약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는 대신 제조 공정과 소재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오랜 연구 끝에 자신만의 제조 기술과 새로운 소재를 개발한 그는 29세가 되던 해인 1759년, 영국 중부 스태퍼드셔(Staffordshire)의 버슬렘(Burslem)에 자신의 첫 공방인 아이비 하우스(Ivy House)를 열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왕실의 도자기(British Royal Pottery)
당시 영국의 도자기는 중국과 독일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조샤이어는 흙으로 왕의 식탁에 오를 만한 “예술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자기의 재료 개발에 매진했고, 마침내 우아한 크림색의 특별한 도자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이 도자기는 당시 조지 3세의 왕비였던 샬롯 왕비(Queen Charlette)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퀸즈웨어(Queen’s Ware)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이 퀸즈웨어를 계기로 조샤이어는 여왕 폐하의 도공(Potter to Her Majesty)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면서 영국 왕실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이후 웨지우드는 대대로 다양한 군주들과 국가 원수들의 식탁을 장식했고, 1995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Queen Elizabeth II)으로 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의 품질 보증 마크인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받게 됩니다.
타고난 사업가 Mr. Wedgwood
1. 마케팅의 귀재
샬롯 왕비(Queen Charlette)의 인정은 브랜드에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불러옵니다. 왕비가 애용하는 도자기라는 이야기는 귀족들 사이에 바이럴 되기 시작했고, 조샤이어와 퀸즈웨어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사업 감각도 남달랐던 조샤이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런던 중심부에 쇼룸을 열었고, 당시에 흔치 않던 카탈로그를 제작해 배포하면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홍보합니다.
뿐만 아니라 트와일라잇 티 파티(Twilight Tea Party)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개최해 런던 상류층에게 차를 대접하며 제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론 웨지우드 제품이 품질과 디자인 측면에서 뛰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조샤이어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여왕의 후광 효과와 상류층 인사들의 사회적 지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브랜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하고, 전략적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2. 산업혁명의 선구자
조샤이어는 사업의 성장과 함께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고 노동의 분업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고, 이런 운영 방식은 산업혁명의 중요한 모델이 되면서 산업 혁신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됩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유럽 전역으로 수출이 확대되면서 웨지우드의 국제적인 명성은 한층 더 올라가게 됩니다.
특히 러시아 제국의 여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the Great)는 웨지우드의 품질과 디자인에 감명받아 일명 개구리 시리즈(Frog Service)라고 불리는 테이블웨어 세트를 952점이나 주문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때 납품한 도자기는 당시의 영국 풍경을 담아낸 서로 다른 그림이 1222개나 그려져 있었고, 18세기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현재 대부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50년을 이어온 기업의 핵심 철학
“Quality has no fear to time.”
품질은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브랜드가 250년을 이어오며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비결은 “장인정신과 끊임없는 혁신 사이의 균형”에 있습니다. 창립자인 조샤이어가 개발한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아르데코(Art Deco), 빅토리안 (Victorian), 아르누보 (Art Nouveau) 양식 등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와 기술을 조화롭게 수용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 화려함과 모던함의 만남, 아르데코(Art Deco) 양식
1. 세라믹 기술의 혁명, 재스퍼(Jasper)

그릇이나 자기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이미지가 바로 재스퍼(Jasper)의 디자인입니다. 재스퍼는 단순히 그릇이라기보다 공예품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조샤이어가 수천 번의 실험 끝에 1770년 탄생한 웨지우드 고유의 제조기술입니다.
특수한 소재를 활용해 매트한 표면 위에 섬세한 부조 장식을 새겨 넣은 방식으로, 도자기 공예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색상이 존재하지만, 특히 푸른색은 “웨지우드 블루(Wedgwood Blue)”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면서 브랜드의 상징이 됩니다. 예전만큼 포트폴리오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진 않지만, 여전히 브랜드의 시그니쳐 디자인으로 통용되며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와 전통, 그리고 독보적인 기술력 때문에 영국 왕립 예술 학회(Royal Society of Arts)는 웨지우드를 두고 “18세기 영국 제조업의 품질 표준을 정립한 영국 도자기 산업의 선구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 사회적 책임과 가치 주도적 경영

조샤이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고용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계급이 존재하던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직원의 복지도 신경 썼습니다. 실제로 1769년에 건설된 에트루리아(Etruria) 공장 마을에는 근로자들을 위한 주택과 학교, 의료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Am I Not a Man and a Brother?”
나 또한 인간이며, 형제가 아닌가?
나아가 노예 무역 폐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1787년에는 노예제 반대 운동을 위해 “Am I Not a Man and a Brother?” 라는 메시지를 담은 메달리온을 제작해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이 메달은 세계 최초의 사회적 캠페인 상품으로 평가받으로 사회적 기업의 시초로 기록됩니다.
조샤이어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하고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의 시대적 환경에서도 이런 사회적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기업에서 실천하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선구자로 볼 수 있습니다.
창립자의 이런 정신은 브랜드의 철학으로 계승되었고, 에너지절감, 지역사회지원 등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다양한 이니셔티브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 다채로운 웨지우드 도자기(Wedgwood Pottery) 컬렉션


일반적으로 웨지우드라고 하면 화려한 패턴과 컬러, 섬세한 장식이 먼저 떠오르기 쉽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미니멀하고 단아한 스타일부터 전통적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식적인 디자인까지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기본적인 럭셔리 테이블웨어(Tableware)는 물론, 유리제품(Glassware), 인테리어 소품(Home decor), 보온병(Tumbler), 차(Tea)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실용성과 취향을 모두 고려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영국 도자기의 유산
웨지우드는 250년의 역사를 지나오며 기업의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는 과정을 거쳤고, 2015년 핀란드의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 피스카르스 그룹(Fiskars Group)의 자회사로 편입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피스카르스 그룹은 웨지우드 외에도 아라비아(Arabia), 이딸라(Iittala),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같은 프리미엄 테이블웨어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영국 출신 브랜드 답게 영국 고급 도자기 시장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고, 글로벌 기준으로는 약 1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중국 내수 브랜드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나 럭셔리 시장의 양극화는 극복해야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서간 전통과 변화를 수용하는 혁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온 웨지우드는 250년을 이어온 정체성을 바탕으로 영국 왕실의 도자기라는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자료
https://www.wedgwood.com/en-gb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osiah-Wedgwood?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