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력(無害力), 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힘

무해력을 상징하는 판다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배우며 자랍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조용한 태도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조용하게 세상을 바꾸는 힘, 무해력(無害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해함은 약하다는 뜻일까요?

우리는 때로 무해한 사람을 존재감이 없거나 소극적인 인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무해력은 수동적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적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통제하며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처나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내면의 힘을 의미합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보면 상선약수(上善若水)에 대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 현명한 스승, 노자(老子)의 삶과 철학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

물은 부드럽게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그 유연함으로 모든 생명을 살립니다. 무해력 또한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세상을 이롭게하 만드는 힘을 품고 있습니다.

무해한 사람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

세상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단정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점점 짧고 날카롭게 변해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갈등을 부추기지 않고 타인의 실수를 조용히 감싸며, 말 없는 배려로 관계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무해력(無害力)을 지닌 사람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정서적 안정감이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무해력을 지닌 사람들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관계의 신뢰를 형성합니다.

그냥 착한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감수성과 자아 통제력이 결합된 성숙한 태도와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해한 존재

무해력을 보여주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My Neighbor Totoro / www.ghibli.jp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는 종종 무해한 힘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Totoro)입니다.

토토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과시하거나 위협하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 자매의 곁에 머물며 가만히 지켜주고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순환 속에 조용히 머뭅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묵묵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침묵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전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적어도 한 명쯤은 이런 무해력을 풍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 없고, 해석도 어렵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해롭지 않음을 전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은 보기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그 무게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정감을 줍니다.

선택 가능한 “지적인 태도”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인간관계의 관용과 이해의 태도가 더 지속 가능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은 태도와 마음이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지적인 태도”일 수 있습니다.

무해력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맥락을 고려하며, 때로는 침묵함으로써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 그리고 이런 태도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이 되어 순환적 작용을 낳습니다.

무해한 힘을 지닌 사람은 정리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타인의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순간의 불편함을 자기 안에서 소화(消火)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해력을 갖춘 사람은 필요한 정보는 담백하게, 타인이 상처 입지 않도록 감정의 온도를 조절해 전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런 무해한 힘을 가진 사람이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고 “부당함을 당해도 무조건 참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해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을 뿐입니다.

무해함의 힘(The Strength of Being Harmless)

앞서 말했듯이 무해하다는 것은 완벽하거나, 혹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소극적인 삶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소리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인상을 만들어 내는 태도입니다.

무조건적인 타인에 대한 배려의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능력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감정도 건강하게 다룰 줄 아는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In a gentle way, you can shake the world.”

온화한 방식으로도 세상을 흔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쉽게 단정하지 않고, 타인의 속도에 간섭하지 않는 작은 실천으로도 무해한 태도는 키울 수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옳지 못한 행동을 상황에 기대어 습관적으로 합리화하진 않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타인의 침묵을 존중하는 일이 무해력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며 스스로 질문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무해(無害)한 사람인가, 유해(有害)한 사람인가.

참고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Tao_Te_C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