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과 형이상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사상을 제시하며 중세 철학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철학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의 이야기입니다.
1. 신학과 철학의 교차점에서 피어난 천재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는 1266년경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던스(Duns)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프란체스코회에 입회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옥스퍼드(Oxford), 파리(Paris), 쾰른(Köln) 등 당시 유럽 최고의 학문 중심지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당시 그는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만큼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Aristotelianism)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당시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스코투스는 신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해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불과 42세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스콜라 철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2. 둔스 스코투스 철학의 핵심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의 핵심은 크게 형이상학, 신학, 윤리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형이상학은 존재의 통일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합니다.
(1) 존재의 형이상학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공통된 본질(common nature)과 개별적인 특성인 “헥세이타스(haecceitas)”를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헥세이타스는 개별 존재를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고유한 특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는 인간이라는 “공통된 본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각각의 사람은 고유한 “개별성”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입니다.
“All beings, insofar as they are beings, are equal.”
모든 존재는 존재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이런 방식의 해석은 중세 철학에서 개별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2) 신의 자유와 사랑
스코투스의 신학은 신의 자유와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는 신이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구원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신의 사랑을 인간 구원의 핵심으로 이해하며, 신은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인간은 신의 사랑에 응답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3)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가 신의 명령에 대한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현대 윤리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3. 개체성과 자유 의지의 변증법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정점을 보여주었고, 핵심 개념인 “개체성”과 “자유 의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있습니다.
(1) 개체성(Haecceitas)
개체성(Haecceitas)의 어원은 “이것”이라는 지시어에 해당하는 라틴어 “haec”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이라는 지시어는 개별 존재를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하는 궁극적인 원리이며, 개별 존재의 “고유성”과 “유일성”을 나타냅니다.
“Thisness is what makes an individual this individual and distinct from all others.”
이것임(개체만의 특성)은 한 개인을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고유한 개인으로 만든다.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개별 존재 자체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어떤 존재가 바로 그것 이게끔 하는 원리이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근거가 되는 고유한 특성입니다.
종(種)이나 유(類)와 같이 여러 개별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성이 공통된 본질(common nature)이라면, 개체성은 다른 개별자와 구분되는 고유한 속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각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개별 존재의 다양성과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2)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며, 이것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유 의지를 통해 인간이 선과 악을 선택하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Will is superior to intellect.”
의지는 지성보다 우월하다.
외부의 강제나 필연적인 원인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사물이나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런 관점은 인간의 존엄과 책임을 강조하며, 민주주의, 인권, 개인주의 같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합니다.
4.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의 중요성
개별적 존재에 대한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성 강조하고, 선택과 책임을 강조한 자유 의지의 개념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1) 다양성의 존중
개체성의 개념은 그 자체로 다양성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인종, 성별,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차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2) 자유 의지와 책임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에 대한 강조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선택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3) 신앙과 이성의 조화
신의 자유와 사랑에 대한 강조는 현대 사회의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이성적인 성찰과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 또한 개별적 특성의 하나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자유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개별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자유 의지 개념은 인공지능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1) 인공지능의 지위와 윤리적 문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독립적인 개별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유사한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과 같은 고유한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고유한 경험과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윤리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책임 소재는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2) 인공지능과 자유 의지
인공지능 시대에 자유 의지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결정을 보조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이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인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스코투스가 주장한 “자유의지”의 개념은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재정립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만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과 책임이 공존할 때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인간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