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을 켜면 쏟아지는 수많은 광고와 소비를 부추기는 메시지들. 더 비싼 집, 더 좋은 차, 더 예쁜 옷… 끊임없는 소비와 욕망의 굴레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과연 행복은 이런 물질적 풍요 속에 있을까요?
1. 디오게네스(Diogenes): 단순함으로 무장한 철학자의 탄생
디오게네스(Diogenes)는 기원전 412년경 흑해 연안의 시노페(Sinop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어린 시절 그는 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삶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은행에서 위조 화폐 스캔들에 연루되어 자신의 고향 시노페에서 추방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디오게네스의 삶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스캔들을 피해 아테네로 망명한 그는 극단적인 절제와 가난을 선택하며, 키니코스학파로 불리는 견유학파(Cynicism)을 접하면서 점차 철학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2. 최소주의와 진정한 자유
(1) 미니멀리즘의 시작, 키니코스 학파(Cynics)의 탄생
아테네로 온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 학파를 창시한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를 만나 새로운 철학적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He has the most who is most content with the least.”
가장 적은 것에 만족하는 자가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자다.
안티스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덕(德)을 중시하고, 쾌락과 물질적인 풍요를 멀리하며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강조하는 철학을 펼쳤습니다.
이런 철학적 사상에 심취한 디오게네스는 오랜 시간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했고, 초반에는 무시하던 안티스테네스는 그 열정에 감명을 받아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제자가 된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 철학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키며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훗날 안티스테네스와 함께 키니코스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자리 잡게 됩니다.
3. 키니코스 학파의 주요 특징
키니코스 학파는 “개”를 뜻하는 그리스어 “퀴온(κύων)”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견유학파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개와 같이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당시 사회의 통념과 관습을 강하게 비판했고, 인위적인 문명과 허례허식을 벗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1) 자연주의
키니코스는 인위적인 문명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내면의 가치와 행복으로 삶을 채우는데 집중하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2) 금욕주의
키니코스는 물질적 풍요와 쾌락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자기 통제를 통해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며 내면의 자아를 찾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3) 비판정신
견유학파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권력과 명예, 부와 같은 욕구와 집착을 낳는 사회적 가치를 경멸했고, 진정한 자유와 충족의 가치는 내면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4) 개방적인 삶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키니코스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떠한 제약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디오게네스도 욕망을 최소화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키니코스적인 삶을 극단적으로 실천하며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습니다.
4. 알렉산더 대왕과의 만남
그는 누구보다도 키니코스적 삶을 실천하며 살았는데요, 세상의 가치와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며 세속적 관습과 물질적 욕망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관련된 일화로 고대의 가장 강력한 정복자로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과의 대화가 유명합니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년~323년)은 대제국을 건설한 전설적인 인물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동시에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스승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게 배운 학문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재산과 권력을 거부하고 항아리 속에서 살면서 최소한의 소유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명성을 듣게 된 알렉산더 대왕이 코린토스(Corinth)의 한 광장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그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I am Alexander the Great. What can I do for you?”
내가 바로 알렉산더이다, 네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Stand out of my sunlight.”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그것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이 대화를 청한다면 위축되거나 출세의 기회로 생각하고 욕망을 드러낼 법도 한데 디오게네스는 달랐습니다.
대왕이 가진 부와 권력에 전혀 위축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과 단순함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자신의 이상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취급해 버립니다.
이런 모습은 물질적 소유와 권력이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며,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키니코스의 철학적 지향을 잘 보여줍니다.
이 일화는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는데요, 알렉산더는 그와의 만남 후 수행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If I were not Alexander, I would be Diogenes.”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무례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처단할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알렉산더는 그의 태도와 철학적 자유를 존중하며 오히려 가르침을 얻어갑니다. 자신은 세상을 정복했지만, 스스로를 정복한 디오게네스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5. 통속에서 자유를 찾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통(항아리)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집과 재산이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고, 누구나 열망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화려하고 웅장한 집은 그저 욕망에서 비롯된 무의미한 탐욕일 뿐이었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소유로도 충분히 자족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Wealth and poverty are names for want and sufficiency. He who has more wants is poorer.”
부와 빈곤은 욕망과 충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더 많이 원하는 자가 더 가난한 자이다.
그는 통 속에서 지내며 “자연에 따라 사는 삶”을 극단적으로 실천했고,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습니다.
물론 너무 극단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그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철학적 지혜는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과소비적 문화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더 많이, 더 비싼 물질적 풍요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무엇일까요?
6. 램프를 든 철학자
1) 진정한 인간의 부재에 대한 외침
그는 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정직한 사람을 찾는다”라고 외쳤다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당시 아테네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부패와 위선에 찌든 인간 본성을 꼬집은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도덕과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으며, 이 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진정한 덕과 도덕적 자각을 촉구했습니다.
2) 사회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램프는 외부 세계를 비추는 동시에, 사람들의 내면을 비추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사회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가치들을 의심하고, 진정한 행복과 도덕적 삶을 살고 있는지, 당신들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서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일화는 단순히 퍼포먼스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 던진 철학적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도덕적으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가?
7.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디오게네스가 보여준 삶의 모습들은 단순히 고대의 기이한 철학자의 일화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 소유 없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소유가 적당할 것인가?
1) 물질적 욕망과 현대 사회의 모순
오늘날 우리는 디오게네스가 살았던 시기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허함과 스트레스와 마주하게 됩니다.
디오게네스처럼 극단적인 무소유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을뿐더러, 현실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채울수록 공허해지는 이상한 수레바퀴에 올라탄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필요해 보입니다.
2)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디오게네스는 외적인 조건, 즉 돈이나 권력, 명예에 의존하지 않는 내적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단순히 괴짜 같은 철학적 실험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항아리 속에서 생활하고 알렉산더 대왕에게 “내 햇빛을 가리지 말라”라고 했던 일화들은 우리에게 소박함과 자유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데요, 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햇빛을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의 질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해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해보는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참고자료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Diogenes-Greek-philosop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