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성과 자유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실존적 사유와 자유를 향한 여정
(1) 어린 시절과 학문적 성장 (1905-1929년)
장 폴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여의었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성장합니다.
뛰어난 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학문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인간 심리와 존재의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키워갔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에 입학하여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였고, 이곳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를 만나게 됩니다.
“We do not know what we want and yet we are responsible for what we are – that is the fact.”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 Jean-Paul Sartre –
이 시기 그는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Phenomenology)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에 깊이 매료되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2) 제2차 세계대전과 철학적 전환 (1939-1945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르트르는 군에 입대합니다. 하지만 곧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1년간 수용소에 억류되었고, 이 경험은 그의 철학적 사유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합니다.
그는 인간이 처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유롭게 사고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때의 통찰은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1943)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프랑스 공산당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세우며 독립적인 사상적 견해를 유지합니다.
(3) 실존주의 철학의 대중화 (1945-1960년대)
전쟁 이후 사르트르의 활동은 실존주의 철학의 대중화에 집중됩니다.
그는 1946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보다 쉽게 설명하며 인간이 신 없이도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을 정의한다는 명제를 세상에 던지며 실존주의적 사상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와 동시에 『구토(La Nausée)』, 『벽(The Wall)』, 『파리코뮌(The Condemned of Altona)』 등의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의 불안과 실존적 고민을 형상화합니다.
(4) 노벨상 거부와 말년 (1970-1980년)
1964년, 노벨 문학상 위원회는 사르트르의 자서전 『말 (Les Mots)』을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발표합니다.
“I refuse all forms of institutionalized honors. The Nobel Prize is one such form.”
나는 제도화된 모든 형태의 영예를 거부한다. 노벨상은 그러한 영예의 한 형태이다.
– Jean-Paul Sartre –
하지만 그는 “작가는 권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고, 문학과 철학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그는 건강 악화로 1980년 4월 15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2.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 실존주의
실존주의란,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철학을 의미합니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단순히 경험하지 않고 사변적으로 논의하는 주제가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삶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유롭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유롭고, 그 자유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 인간
그는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본질(선한 인간, 악한 인간)적 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본질을 형성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Existence precedes essence.”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
– Jean-Paul Sartre –
인간은 특정한 목적이나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주장입니다.
이 개념은 개인주의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현대적 가치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오롯이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2) 진정한 자유
사르트르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누구도 우리의 행동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에는 짊어져야 할 무게가 따릅니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Man is condemned to be free.”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 Jean-Paul Sartre –
사르트르는 니체의 “초인”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누구나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Freedom is what you do with what’s been done to you.”
자유는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 Jean-Paul Sartre –
우리는 종종 외부 요인으로 인해 “나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진정한 자유는 외부의 제약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주어진 상황(외적인 요인)을 바꿀 있지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대한 자유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자기기만(Bad Faith)
그는 인간이 종종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자기기만(Bad Faith, Mauvaise Foi)”에 빠진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기만이란, 단순히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존재임을 망각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특정한 정체성에 가두고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나아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역할을 자신의 본질이라고 믿고 역할에 갇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역할이 자신의 모든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4) 타인의 시선
누구나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안도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절대적 기준이 되면, 기대에 맞추려 하거나 스스로의 한계와 위치를 규정한다면 우리를 속박하는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Hell is other people.”
타인은 지옥이다.
– Jean-Paul Sartre –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 중 하나인 이 말은, 언뜻 보면 타인에 대한 혐오를 내포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우리에게 지옥이 시작되며 자유가 제한된다는 의미입니다.
“Most people do not think, they simply trust their senses.”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과 귀보다 의견에 의지한다.
– Heraclitus –
어둠의 철학자로 불리던 고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또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진실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중의 의견이나 편견에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3. 사르트르가 전하는 메시지
그는 인간이 선험적(先驗的)으로 결정된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이성이나 사고 능력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식이나 개념적 경험을 통해 채워지고 만들어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사상과 연결되며, 여전히 많은 철학적·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며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