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를 넘어 세계인의 윤리적 상징이자 가톨릭교회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이 향년 88세로 선종하셨습니다. 오늘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애와 철학, 그리고 세상에 남긴 의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는 윤리적 상징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The Pope)이라는 직책은 단지 한 종교의 최고 지도자만이 아닙니다. 교황은 2천 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교회의 계승자로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상징적 위치에 있습니다. 전 세계 약 12억 명에 이르는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이자, 교회 교리와 윤리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권위를 지닌 인물입니다.
동시에 전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는 윤리적 상징으로 통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소박한 생활 방식, 진심 어린 메시지, 스스로의 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1. 종교를 초월한 도덕 권위
교황의 영향력은 종교적 권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정식 정치 지도자가 아니지만,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윤리와 양심의 상징적 목소리로 평가받습니다.
UN, EU, 세계 각국 정상들 앞에서 연설을 통해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 난민 문제, 전쟁과 인권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종교를 넘어선 “인류 보편 가치”에 기반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타 종교나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도 공감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2. 중립성 띄는 도덕적 중재자
교황청(바티칸)은 중립국이자 외교적 중재자로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교황 또한 특정 국가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초국가적, 초정파적 위치에서 발언합니다. 이로 인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도덕적 중재자”로 받아들여지며, 전쟁 중재나 평화 촉구에 있어 신뢰받는 목소리가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며, 젊은 시절 화학 기술자로 일하다가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1998년 대주교로 승진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습니다.
2013년 3월 13일,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이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역사상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습니다. 그는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여 청빈과 겸손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1. 종교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개혁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司牧)에 집중했습니다. 난민과 빈곤층, 환경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특히 2015년 발표한 회칙『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기후 위기와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교회 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자 노력하며 여성과 평신도의 역할 확대하고, 이혼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포용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개혁은 전통주의자들과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2. 선종과 세계의 애도
2025년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중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38일간 치료를 받았으며,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부활절 월요일인 4월 21일 오전 9시 45분, 바티칸의 산타 마르타 숙소에서 선종하셨습니다.
선종 하루 전인 4월 20일 부활절 미사를 위해 바티칸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 등장해 축하 메시지를 전한 것이 공식적으로 남겨진 마지막 목소리입니다.
교황의 선종 소식에 전 세계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고, 미국 부통령 J.D. 밴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등은 그의 겸손과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을 기렸습니다.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한 시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은 교회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 시기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는 병원처럼 아픈 이들을 돌봐야 한다”라고 표현하며, 교회가 존재해야 할 자리(상처 입은 이들 곁)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I see clearly that the thing the church needs most today is the ability to heal wounds and to warm the hearts of the faithful.
It needs nearness, proximity. I see the church as a field hospital after battle.”오늘날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교회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다가가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전쟁 직후의 야전 병원처럼 생각합니다.
– Pope Francis, Interview with La Civiltà Cattolica, 2013 –
이런 발언을 통해 가톨릭 신앙이 지닌 보편성과 사랑의 정신을, 경계와 조건 없이 세상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민자 수용 문제에서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경각심과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신념을 보여주었고,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다음 교황에 대한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를 어디까지 이끌었는지를 이해한다면, 차기 교황에게 주어질 과제가 얼마나 중대한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새로운 교황은 단지 후계자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끈 “교회 쇄신”의 다음 장을 설계할 책임을 지닙니다.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이어가는지는 다음 교황의 성향뿐 아니라, 그를 뽑는 추기경단의 시대 인식과 교회 비전에 달려 있습니다.
차기 교황 선출 과정과 일정
교황 선종 후, 바티칸은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거친 후, 약 15~20일 이내에 추기경단이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를 개최합니다. 이번 콘클라베는 추기경단의 수석 추기경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재할 예정입니다.
현재 거론되는 주요 후보들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피터 턱슨 추기경 (Cardinal Peter Turkson)
가나 출신으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Justice and Peace) 의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 목소리로, 사회 정의와 개발 이슈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기에도 여러 차례 중용된 이력이 있어, 개혁적 흐름을 이을 가능성 있는 후보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Cardinal Luis Antonio Tagle)
필리핀 출신으로, 현재 교황청 복음화성 장관(Prefect of the Dicastery for Evangelization)을 맡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시아권 가톨릭의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히 신임했던 개혁파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젊고 온화한 이미지, 대중과의 소통력 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어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3.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 (Cardinal Péter Erdő)
헝가리 출신으로, 부다페스트-에스테르곰 대주교이자 유럽 가톨릭 내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과거 유럽 주교회의(Consilium Conferentiarum Episcoporum Europae, CCEE) 의장을 지내며 교리적 정통성과 전통을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전통주의적 성향의 추기경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후보입니다.
4. 마테오 주피 추기경 (Cardinal Matteo Zuppi)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President of the Italian Episcopal Conference)을 맡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목 철학과 개혁 노선을 계승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사회 정의, 난민 문제, 종교 간 대화에 있어 실질적인 행동과 중재 능력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내외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황을 뽑는 선출 의식, 콘클라베(Conclave)
교황의 선종 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핵심 과정이 바로 “콘클라베(Conclave)”입니다.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 “con clavis”에서 유래한 단어로, 과거 교황 선출 과정 중 외부 개입을 막기 위해 문을 잠근 채 투표를 진행했던 역사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지금도 실제로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 모인 추기경단이 외부와 차단된 채 투표에만 전념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콘클라베에는 전 세계의 추기경 중 만 80세 미만인 추기경들만 투표권을 가집니다. 이들을 선거권 추기경(elector cardinals)이라고 부르며, 인원은 대체로 120명 내외입니다. 이 추기경단이 국적과 상관없이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를 대표하여 교황의 후계자를 선출하게 됩니다.
매일 최대 네 차례(오전 2회, 오후 2회) 비밀 투표가 진행되며, 전체 유효 투표 수의 3분의 2 이상 득표해야 교황으로 선출되는데,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투표를 반복합니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동안 일반 신자들과 세계 언론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색깔에 주목하게 되는데,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면 아직 선출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흰 연기가 나오면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시대를 넘어 기억될 이름, 파파 프란치스코
이탈리아어로 교황을 파파(Papa)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직책이 아닌, 세상을 품는 아버지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직의 권위보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앞세우며, 모두의 “아버지”로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 주십시오.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편가르지 않는 넓은 마음으로 삶을 살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걸어주십시오.
– Pope Francis –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절제하며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다가가려 노력했고, 사치스러운 궁전 대신 소박한 숙소를 택했습니다. 규율보다 연민을 앞세워, 세상이 잊기 쉬운 존재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대신 전했습니다.
파파 프란치스코는, 그 이름처럼 끝까지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물며 인류의 양심을 대변한 교황으로 시대를 넘어 기억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5-04/pope-francis-dies-on-easter-monday-aged-88.html